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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땅에 들어온 교회의 역사

그리스도의 군사 2014. 5. 20. 14:35

 

한국 땅에 들어온 교회의 역사

성경본문 : 이사야 56 : 1-8
외울말씀 :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을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사 56 : 8)
부를찬송 : 371장, 277장, 271장

동방에 해뜨는 나라, 백의 민족이요, 단일 민족이며 동방 예의지국인 이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 온지가 1세기를 넘어섰고, 제2세기를 맞이하여 힘찬 전진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크신 역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한국 땅에 들어온 교회의 역사를 약술코저 합니다.

첫째 한국 교회의 기초 작업

1. 선교사 전 시대.

1816년 9월 1일에 영국인 바실 홀이 백령도와 청도에서 한문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1817년에는 군산, 추자도에서 성경을 반포하였습니다.

1832년에 칼 구츨라프가 백령도, 대청도, 충남 홍천과 금강하류에서 성경을 반포하였고,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왔던 토마스 목사는 순교를 당하면서 성경을 반포하였는데, 그 목격자 중 12세 소년 최치량이 신자가 되었고 그를 죽인 박춘권이 후에 회개하고 평양의 초대교인이 되었습니다.
1867년에 윌리암스 선교사가 고려문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성경을 팔면서 전도하였고 1872년에는 로스와 맥킨타이어 선교사들이 중국 우장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전도하였고 1874년에는 고려문에서 전도하다가 이응찬, 박흥준, 이성항, 김진기를 전도하여 1876년에 세례를 주었고, 1881년 서성륜 세례를 주었고 황해도 솔래 1881년에는 신약성경 전체가 완료되었습니다.
한편 일본에 건너가 예수를 믿은 이수정은 1883년 4월에 세례를 받고 1884년에 마가복음 한글판을 발행하였는데 이 성경은 1885년에 입국한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가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2. 선교사들의 입국.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대원군이 하야한 후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과의 우호관계와 통산관계를 갖게 되었고, 1882년에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니 영국, 독일, 러시아등이 계속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여기에 힘입어 한국에 선교문이 열려, 1884년 9월 20일 알렌선교사가 의사로서 한국에 입국 후 의술의 인정을 받아 1885년에 광혜원 병원이 세워졌고 1885년 4월에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가 입국하였고, 그 후에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하였다.

3. 활발한 선교사업.

의료선교와 교육선교는 우리나라에 크나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 선교는 모든 면에서 민족의 계몽 역할을 담당하여 오늘의 찬란한 한국을 만든 것입니다.

둘째 교회의 조직과 큰 부흥

1895년의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의 정책이 조선을 삼키려는 기미를 보였고 1905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 보호조약을 강제로 맺어 조선을 삼켰던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이런 비운을 만난 우리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었으므로 대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1. 장로교 총회조직.

총회가 조직되기 까지는 선교사 공의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공의회(평양신학교설립)가 있었고 1907년에 독노회를 조직하여 목사일곱(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 방기창)을 안수하여 첫 목사들을 배출하였고 이기풍목사는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였던 것입니다.

1912년 9월 1일 7개노회에 예수교 장로회 조선총회를 조직하였던 것입니다.

2. 기독교 조선 감리회 조직.

1930년 12월 2일 제1회 총회가 서울 협성신학교에서 개최되어 제1대 총리사로 양주삼 목사가 피선되었습니다.

3. 한국의 오순절인 1907년 부흥운동.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부흥사 경회는 10일동안 계속되었는데 초대교회와 방불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4. 백만명 구령 운동전개.

1910년의 한일합병은 전 민족에게 좌절감을 주었으나 한국교회는 백만명 구령운동을 전개하면서 힘찬 전진을 문서선교, 헌신전도로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5. 기독교 문서 사업으로 질적부흥에 이바지함.

신약성경은 1904년에, 구약성경은 1911년에 완전 개역 성경은 1937년도에 발간되었고, 찬송가 편찬은 1908년에 출간 되었습니다.

1890년에 조선성교서회 가 조직된 후 교리서 전도서 설교집 교양집 사상집 신학교 교과서 등이 출판되어 전도에 큰 역할을 담당케 하였습니다.

셋째 십자가를 짊어진 한국교회


1. 3.1운동에 앞장선 교회.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대표 33명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조직 동원의 모체가 교회가 되었습니다.

2. 일본 신사참배 강요와 수난.

일본은 방대한 제국주의를 꿈꾸고 정신적 통일을 꾀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신사(神社)란 일본천황들의 죽은 영들, 전사자들의 영을 모신 곳이라 하여 그곳에 머리 숙여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1935년 가을, 숭실, 숭의여학교가 신사 참배 반대한 이유로 폐교 되었고, 1938년 9월 10일에는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총회장 홍택기)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 국민의식 이라 하여 참배키로 결의하였습니다.

3. 해방된 민족과 공산당 박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온 겨레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애국가를 목이 메이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뜻하지 않게 북위 38도선이 그어져 이북에 있는 교회는 공산당들에게 수난을 당했습니다.

1948년 10월 20일에 여수반란사건,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강행하여 막대한 인명, 교회피해를 입혔습니다.

넷째 해방후의 한국교회

1. 분열에 분열의 역사를 남긴 상처투성의 교회.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등 분열의 역사로 오늘에 이르렀으나 그래도 양적부흥을 가져왔습니다.

2. 신학교를 통한 일군 배양.교단마다 신학교를 세워 일군을 배양하였으므로 급성장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3. 해방 후에 들어온 기관들.해방 이후에 여러 기관들이 한국에 들어왔으니 1953년에는 선명회가 1950년에는 침례회가 정식으로 발족하였고, 1954년에는 그리스도 교회 1947년에 나사렛교회가 들어와 힘차게 선교를 하였고, 구라파선교회, 적십자운동등 여러 기관들도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4. 대형 전도집회가 교회성장운동.1970년대 와서 초대형 집회하면 한국 이 되었습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에 100만의 성도가 모였고 1974년 8월에 대학생 선교회주최로 엑스폴로 74 운동때는 150만, 1978년에는 200만 성도가 모여 세계에 유래없는 대 성장을 보였습니다.

5. 세계교회의 중심지가 된 한국교회.선교 2세기를 맞는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고 힘차게 전진하고 있으니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된 한국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맺는말

우리 한국교회는 막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계속 기도하고, 성경대로 살며, 전도하며 민족 복음화는 물론 세계 복음화에 일익을 감당합시다.

 

출처 : 낙송사랑방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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