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들어온 교회의 역사 1816년 9월 1일에 영국인 바실 홀이 백령도와 청도에서 한문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1817년에는 군산, 추자도에서 성경을 반포하였습니다. 1832년에 칼 구츨라프가 백령도, 대청도, 충남 홍천과 금강하류에서 성경을 반포하였고,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왔던 토마스 목사는 순교를 당하면서 성경을 반포하였는데, 그 목격자 중 12세 소년 최치량이 신자가 되었고 그를 죽인 박춘권이 후에 회개하고 평양의 초대교인이 되었습니다.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대원군이 하야한 후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과의 우호관계와 통산관계를 갖게 되었고, 1882년에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니 영국, 독일, 러시아등이 계속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의료선교와 교육선교는 우리나라에 크나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 선교는 모든 면에서 민족의 계몽 역할을 담당하여 오늘의 찬란한 한국을 만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이런 비운을 만난 우리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었으므로 대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총회가 조직되기 까지는 선교사 공의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공의회(평양신학교설립)가 있었고 1907년에 독노회를 조직하여 목사일곱(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 방기창)을 안수하여 첫 목사들을 배출하였고 이기풍목사는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였던 것입니다. 1912년 9월 1일 7개노회에 예수교 장로회 조선총회를 조직하였던 것입니다. 1930년 12월 2일 제1회 총회가 서울 협성신학교에서 개최되어 제1대 총리사로 양주삼 목사가 피선되었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부흥사 경회는 10일동안 계속되었는데 초대교회와 방불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10년의 한일합병은 전 민족에게 좌절감을 주었으나 한국교회는 백만명 구령운동을 전개하면서 힘찬 전진을 문서선교, 헌신전도로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1904년에, 구약성경은 1911년에 완전 개역 성경은 1937년도에 발간되었고, 찬송가 편찬은 1908년에 출간 되었습니다. 1890년에 조선성교서회 가 조직된 후 교리서 전도서 설교집 교양집 사상집 신학교 교과서 등이 출판되어 전도에 큰 역할을 담당케 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대표 33명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조직 동원의 모체가 교회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방대한 제국주의를 꿈꾸고 정신적 통일을 꾀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신사(神社)란 일본천황들의 죽은 영들, 전사자들의 영을 모신 곳이라 하여 그곳에 머리 숙여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온 겨레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애국가를 목이 메이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뜻하지 않게 북위 38도선이 그어져 이북에 있는 교회는 공산당들에게 수난을 당했습니다. 1948년 10월 20일에 여수반란사건,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강행하여 막대한 인명, 교회피해를 입혔습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에 100만의 성도가 모였고 1974년 8월에 대학생 선교회주최로 엑스폴로 74 운동때는 150만, 1978년에는 200만 성도가 모여 세계에 유래없는 대 성장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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