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Mani) & 마니교(Manicheism)
마니의 생애
마니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마니의 대적들을 통해 얻은 그에 관한 정보는 대체로 위조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때때로 모순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금세기 초에 중국 북서쪽(투르키스탄(Turkestan))과 1930년대에 이집트(메디네트 메디(Medinet Madi))에서 많은 자료가 발견되었다. Tabessa(Algeria) 근처에서 1918년에 발견된 4세기 라틴어 텍스트도 언급할만 하고, “On the Becoming of His Body"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Cologne Mani Codex로 알려진 이집트 출처인 4C 또는 5C 헬라어 사본은 마니의 젊은 시절의 삶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아주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Ismant el-Kharab(이집트)에서의 발굴로 4세기의 마니교도들의 정착지에서 나온 다양한 언어들로 된 저작물들도 중요하다.
마니는 페르시야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인 216년 4월 14일에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유대기독교의 일파인 엘카사이파(Elchasaites)에 속했다. 그 종파를 통해서 마니의 사상체계에서 발견되는 어떤 영지주의 개념이 온 것 같다. 그는 12살에 신의 계시를 받고, 다시 24살에 또 다른 계시를 받았다. 이런 체험을 한 후로, 부타, 조로아스터, 예수와 같은 이전의 종교 설립자의 계시들은 참된 것들이긴 하지만 불완전해서, 소위 “빛의 종교”라고 그가 언급하는 것을 통해서 세상에 충만한 계시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일이라고 그는 믿게 됐다. 마니의 추종자들이 그를 “보혜사가 거주하시는 분”이라고 칭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마니는 습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處世(처세)했다.
두 번째 계시 후인 아마도 242년이나 243년에 마니는 인디아까지 여행을 했다. 페르시야로 돌아와서 직접 페르시야의 왕 Shapur 앞에 서서 자신의 신적인 사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마니가 자신의 첫 저작을 그 왕에게 돌릴 정도로 왕은 고무되어, 마니는 이후 30년 이상 자신의 사상을 자유롭게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274년에 틀림없이 공적인(official) 조로아스터교의 압력을 받던 차에, 마니는 새 왕 Bahram 1세의 비위를 거슬러 처형당했으니, 때는 277년 2월 26일이었다.
마니는 일찍부터 선교사들을 보내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곳으로 가게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박해가 일어나자 마니교는 동으로, 서로 더욱 확산되었다. 마니교는 762-840년까지 중국 투르키스탄에서 위구르인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다. 거기에서 마니교는 더 동쪽으로 중국, 시베리아, 그리고 만주에까지 퍼져갔다. 또한 3세기 말에는 서진하여 수리아와 갑바도니아를 지나 카르타고, 로마, 이집트에 이르렀고. 거기에서 마니교는 북아프리카로 넘어간 것이다.
로마 제국내에서의 마니교는 디오클레티안 시대(284-305)로부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당국으로부터의 반대에 직면했다. 당국 차원의 반대는 페르시야에서 시작되어, 로마에서는 오랫동안 마니교가 大敵(archenemy)으로 인식될 정도로 심각하였다. 마니교 교리에 대한 첫 문헌적인 공격은 이집트 이교도 철학자 Alexander of Lycopolis로부터 왔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정통 기독교인들도 마니교도들의 저작들, 신앙, 관습들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Syrua Nisibis의 집사인 Ephrem, Acts of Archelaus의 저자(Hegemonius?), 이집트 Serapion of Thmuis(이집트), Titus of Bostra(Syria), Epiphanius of Salamis(사이프러스), 그리고 아프리칸스 Marius Victorinus 그리고 어거스틴이 특히 유명하다. 이모든 이들은 4-5세기 초에 활동했다. 또 다른 반 마니교 저술가들이 뒤를 이었으니, 수리아인들인 Severus of Antioch가 6세기에, Theodore bar Khoni가 8세기에, 그리고 아랍인들인 Ibn Wadih al-Ya'qubi가 9세기에, an-Nadim이 10세기에, al-Beruni가 11세기에, al-Sharastani가 12세기에 활동했다. 6세기 이후에 서방 마니교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없으나 그 어떤 개념들은 Paulicians과 Bogomils와 알비파(Albigensians) 같은 신마니교 그룹들의 사고속에 계속 활동했다.
- 참고 사항-
나스틱파 목록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음은 나스티시즘(Gnosticism, 영지주의, 그노시즘) 종교 운동과 관련된 분파들의 목록이다. 페르시아의 나스틱파들을 제외할 때, 나스틱파들은 대체로 자신들을 '나스틱(영지주의자)'이라 부르지 않고 '기독교인'이라 불렀다. 나스틱파들의 명칭은 주로 기독교 교부들 중 이단 연구가들이었던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며 나스틱파 자신들이 스스로를 칭한 이름이 아니다.
[편집] 기독교 나스틱파들
• 에비오님파(Ebionites)
• 마르키온주의(Marcionism).
[편집] 시리아-이집트의 나스틱파들
• 세트파(세트주의, Sethians, Sethianism): 구약성경의 셋(Seth)을 중시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
• 바실리데스파(바실리데스주의, Basilidians, Basilideans): AD 2세기. 시원자 바실리데스(Basilides: fl. AD 117-138)에서 유래한 이름
• 토마스파(토마스주의, 도마주의, Thomasines, Thomasenes): 사도 토마스에서 유래한 이름
• 발렌티누스파(발렌티누스주의, Valentinians, Valentianism): AD 2세기. 시원자 발렌티누스(Valentinus: AD c.100 - c.160/180)에서 유래한 이름
• 바르다이산파(Bardesanites, Bardasanes, Bardaisanites): AD 2세기 - 3세기. 시원자 바르다이산(Bardaisan, Bardesanes: AD 154-222)에서 유래한 이름
• 아르콘주의(Archontics, Archontici): AD 2세기. 그리스어 '아르콘(Archon)'에서 유래한 이름
• 바르벨로파(Barbeliotae 또는 Barbēlōgnostics): 최고신의 최초의 발출물인 바르벨로(Βαρβηλώ Barbēlō)를 중시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
[편집] 페르시아의 나스틱파들
• 만다야교(Mandaeanism, Mandaeism, Mandaeans)
• 마니교(Manichaeism, Manicheism, Manichaeans): fl. AD 3세기 - 7세기. 창시자 마니(Mani: c. 210-276)에서 유래한 이름
• 바그놀스파(Bagnolians: AD 8세기): 프랑스의 도시 바그놀스(Bagnols)에서 유래한 이름
[편집] 기타
• 오피스파(Ophites, Ophians, Serpentinians): fl. c. AD 100. 구약성경의 뱀을 중시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 여러 나스틱파들을 통칭하는 이름
• 카인파(Cainites, Cainians, Gainites): 구약성경의 카인을 중시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
• 카르포크라테스파(Carpocratians): fl. AD 2세기. 시원자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 of Alexandria)에서 유래한 이름
• 보르보로스파(Borborites, Borborians, Phibionites, Koddians, Barbalites, Secundians, Socratites): 그리스어 '보르보로스(borboros, 진흙)'에서 유래한 이름
• 니골라오파(니골라오주의, Nicolaism, Nicholaism, Nicolationism, Nicolaitanism, Nicolaites, Nicolaitans, Nicolaitanes)
•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 연금술 학파)
[편집] 중세의 나스틱파들
• 카타리파(Cathars, Catharism, 알비파, Albigensians): fl. AD 12세기 - 13세기
• 보고밀파(Bogomils, Bogomilism): AD 927-970년경에 발생
• 바오로파(Paulicians, Paulicianism): fl. AD 650-872
• 톤드라크파(Tondrakians): fl. AD 9세기 초기 - 11세기. 서아르메니아(Western Armenia)의 도시 톤드라크(Tondrak)에서 유래한 이름
마니의 종교
지난 250년 이상 마니교의 기독교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다. 어거스틴 자신이 여러번 마니교를 분파, 이단, 분열주의자들로 언급했다. 이는 그가 마니교를 기독교에 대한 왜곡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거스틴의 마니교 대적들은 계속적으로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그것도 유일한 참된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것으로 언급했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중에 마니교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같은 동방의 종교들에 의해서 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Cologne Mani Codex 같은 마니교 문헌들이 발견되자 마니교와 마니 자신이 어떤 다른 소스보다 어떤 기독교 사상에 의해서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더욱이 기독교 요소들이 그들이 개종하기를 원하는 지역의 종교 전통에 따라 강조되곤 하였다.
마니교는 3세기에서 적어도 7세기까지 계속되었고, 결국은 북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확산되었다. 그것의 신앙 체계가 아주 복잡하고,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되어 있지만 덜 본질적인 요소에 대해서 차이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의 핵심 요소들은 거의 모든 지역의 마니교도들이 공유했다. 어거스틴이 아마 그것을 알고서 마니교의 본질적인 사상을 기술했을 것이다.
모든 마니교의 종교 체계는 “왜 악이 존재한가?”라는 한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마니교의 답변은 급진적인 이원론 형태로 제공된다. 우주발생 혹은 세계 기원에 관한 설명은 세 때(three moment)의 구도로 이뤄진다. 첫 때에는 영원한 두 원리들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한다. 선은 바람직한 특징들(평화, 지성 등)만을 보이고, 빛의 영역에 거주한다. 이 원리가 바로 하나님이거나 혹은 “위대함의 아버지(Father of Greatness)”이다. 또 다른 원리는 본질적으로 악하고 동의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물질 혹은 사탄으로 불려지고, 이 원리는 어두움이라는 영역에 거주한다.
둘째 (혹은 중간) 때는 만물의 현재 상태를 말한다. 끝없이 어두움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소요 중에, 악의 원리는 빛의 영역에 인접한 영역에서 일어난다. 방어하면서, 선의 원리는 “생명의 모친(Mother of Life)”을 불러낸다. 그것은 차례대로 빛의 영역의 방어를 책임진 “제일 인간(Primal Human)”을 불러낸다. 오랜 투쟁 후에 악의 원리는 제일 인간을 압도하고 빛을 사로잡는다. 또한 어떤 악의 원리의 힘들은 빛의 영역에 의해서 사로잡힌다. 이결과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이 혼재되게 된 것이다.
선한 원리이신 하나님도 공격받을 수 있고, 축소될 수 있다. 우리 현재 보이는 세계는 이런 빛과 어두움이 혼합된 것이다. 우리가 기뻐하고 바람직한 것은 포로된 빛에 기인한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빛의 감옥인 어두움에 기인한 것이다. 포로된 빛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선의 원리는 두 단계를 밟는다. 첫째로, 위대함의 부친은 빛의 해방을 위해서 마니교를 창설하셨다. 이 작업은 해와 달을 포함한다. 그것들은 오염되지 않은 빛의 원리를 함유하고, 해방된 빛을 위한 모집 정류장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물질 창조는 필요한 행위이고 빛의 물질이 상실한 것을 다시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2단계는 우주 전쟁에서 사로잡힌 악령들에게 “제 3의 메신저(Third Messenger)"을 보내고, 상대 性의 원하는 모습에서 각자에게 나타남으로 그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포획한 빛의 입자를 방면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면된 빛은 달과 해를 통해서 빛의 영역으로 가도록 보내진다.
악의 원리는 제 1 인간(Primal Human)의 라이벌을 창조한다. 이것은 숫악령과 암악령의 짝 지음으로 생긴다. 그것이 지상의 첫인간인 아담이다. 아담은 자신 안에 빛(영혼)과 물질(육체)를 포함하므로 축소된 세상, 즉 소우주이다. 후에 악령들은 다시 짝지어 이브를 생산했다. 이브는 아담보다 덜 빛을 가졌긴 하지만 아담과 유사한 복합물이다. 그러므로 첫 인간의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악의 주도권의 소산이고, 주로 자손을 생산해서 가능한 한 가시계에서 포로된 빛의 수만큼 그 자손들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마니교에서의 예수는 정통 기독교에서의 예수와는 다르다. 악의 새로은 책략에 맞서기 위해서 예수는 빛의 처소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신적인 지식을 보이기 위해서 보내졌다. 마니교에서는 예수니, 그리스도니 하는 타이틀를 가진 이들이 여럿 있다. 어거스틴은 적어도 이런 존재들 셋은 알았다. 하나는 해방되어 해와 달에 위탁된 영광 예수(Jesus Splendor)이다. 또 하나는 우리의 물질계에 갖힌 빛이신 고난당하는 예수(suffering Jesus)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세상에 와서 빌라도의 손에서 수난당하고 죽었던 것으로 나타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다. 구원의 지식을 지닌 존재인 것은 몰라도, 이런 존재들 중 그 어떤 것도 실제로 구세주인 것은 아니다. 정통 기독교에서의 예수는 거짓이고 가장한 마귀라 한다. 그는 구원의 사명을 위해서 빛의 왕국에서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육체을 가졌기에 참으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인간의 육체는 악한 기원을 가졌고, 출산을 통해서 나온다. 마니교의 ”참되 예수“는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도 태어난 것도 전혀 아니다. 물론 이런 가르침은 마니교와 정통 기독교 사이의 주요 쟁점중의 하나이다.
물질계로부터의 빛의 방면은 마니교의 충분한 멤버들의 중재로 이뤄져야 한다. 이들이 택자(the Elect)(완전자, 성도들)인데, 남녀 계층을 망라한다. 남자들만이 장로들, 때로는 집사를 일컬었던 주교들, 교사들의 상층 계급에 속했던 것 같다. 어떤 동방 마니교 문헌은 노래하는 자와 서기관들 같은 다른 직분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공동체 생활의 의식이나 정비와 관련된 제한된 기능을 가졌던 것 같다. 마니교에서의 다른 주요 계층은 청문자들(Hearers) 혹은 세례 예비자들이다. 그것 역시 남녀를 망라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의 순간은 첫 순간의 질서로의 회귀를 포함한다. 그것은 가능한 많은 빛이 택자의 중재로 물질에서의 방면될 때 일어날 것이다. 미래에 이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서 큰 불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사라지고 악의 원리와 그것은 모든 실체들은 어두움의 왕국으로 퇴각하고, 다시 완전히 빛의 왕국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그러나 회복된 질서는 애초에 있었던 것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빛 가운데 얼마는 어두움의 왕국에 사로잡혀서 영원히 상실될 것이다. 대적들이 열심히 지적하는 대로, 이것들은 선의 원리가 영원히 손상되고 감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금욕주의
마니교의 시각에서 보면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각각 물질과 빛의 물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原전쟁의 소우주이다. 특히 인간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런 혼재된 상태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스스로 옮기지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부르심을 받은 것도,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마니교도들은 그 부르심을 분명하게 듣고 참된 반응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 사회에서 얼마의 행복한 사람들인 택자들(the Elect)은 물질적 감옥으로부터 빛의 방면을 이뤄나갈 도구들이다. 이것은 소화작용으로 수행해야 할 매우 성스러운 역사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파라독스중의 하나가 모든 인간의 신체는 악령적인 기원을 가졌지만, 일부 사람들이 빛의 방면에 관한 구원의 즉각적인 도구들이란 점이다. 이 빛이 다양하게 모든 사물(고기와 술은 어떤 빛도 갖지 않았다)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택자들을 위한 음식에는 주로 약간의 양념과 쥬스 뿐만 아니라 어떤 곡식, 채소, 과일이 있다. 모든 것은 그것들의 밝은 색상 비율로 빛의 소유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가르쳐진다.
본질적으로 마니교의 진짜 구원자들은 택자들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해야 할 그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가능한한 많은 빛의 방면이라는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반면에, 가능한한 물질을 불포함하기 있어하기 때문이다. 택자들이 따라야 할 금욕 규정은 3가지 인봉과 5가지 계명이 있다. 그 계명들은 거짓말 하지 않기, 죽이지 않기, 고기 안먹기, 동정으로 남기(특히 성관계로부터), 무소유이다.
“입의 인봉(seal of mouth)"은 자신의 감각을 삼가서 신성모독을 삼감, 금지된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손의 인봉(seal of hands)"은 행동을 삼가서 자기 식량을 추수하는 것을 포함해서 생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의 인봉(seal of thoughts)"은 빛의 영역과 빛의 방면에 거슬리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금생으로부터 초연한 모델들이어야 하기 때문에, 택자들은 잦은 기도(하루 7번), 금식(1년의 1/4)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어떤 가족 유대나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서방에서는 그들은 영원한 나그네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들은 어떤 것도 죽일 수 없고, 자신의 식량을 거둘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들을 위해서 그 일들을 해야 했다. 바로 그것이 청문자(hearer)들의 일이요, 중요한 종교적인 의무였다. 청문자에게는 행동적인 규범이 덜 요구되었다. 그들도 거짓말, 살인, 도둑질, 간음, 종교적인 임무의 태만을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손노동을 할 수 있고,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 “죽이는 것” 즉 추수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택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음식 규정은 덜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더 적은 기간의 금식(1년 50일, 아마 일요일 금식)과 덜 잦은 기도(하루 4번)을 할 수 있었다. (출산은 그들에게도 만류되었지만) 결혼은 할 수 있었다.
죽음에서 택자의 운명은 자신의 빛의 물질로 하여금 빛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출발하게 하는 것이다. 청문자의 운명은 택자로 환생하는 것이요, 비로소 구원의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 마니교에 갖힌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적인 육체들을 지옥가게 되어 있다.
신성한 작품들
다음의 7가지는 마니의 저술이자 마니교의 경전이다고 할 수 있다: Shapurakan, Book of the Giants, Great(or Living) Gospel, Treasure, Pragmteia(Great Letter to Pattik과 같은 것일 것이다), Mysteries, Letters. 어거스틴 시대의 마니교도들은 나중의 5개만 알았던 것 같다. 마니는 또한 무식한 자들을 위해서 그림책도 마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잔존하지 않고, 요약된 것만 조금 있을 뿐이다.
물질을 악과 동일시하고, 물질 창조를 사랑의 동기가 아닌 필요한 역사(필요악)로 보았기 때문에, 마니교는 창세기에 있는 물질 창조기사를 거부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악의 원리와 동일시했다. 그것은 또한 신약의 “유대인들의 조작”으로 보는 모든 것들과 구약 자체를 거부했다. 거부된 성경의 악의 기원의 증거는 그것들의 내용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노, 시기, 복수 등에 매인 신을 보여주고, 원수를 죽이고, 일부다처제, 출산등의 부도덕한 행위를 장려하기 때문이다.
의식 시행
Bema
5단계의 택자의식
1) 평화의 신호
2) 의장이 후보자를 회중의 중앙으로 인도
3) 키스 교환과 존경신호
4) cheirotonia(의장의안수)
청문자의식(정보 없다)
오른 손 사용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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