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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주교

그리스도의 군사 2013. 5. 9. 11:03

천주교(로마 카토릭)

 

서론

 

로마 카톨릭(천주교)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종교로서 현재 전 세계에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이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기독교와 유사하면서도 분명히 달라서 이단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종교라고 해야 타당할 것 같다. 한국 땅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호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특성상 조상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그 문제의 자유로움, 크게 구속받는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와 달리 큰 구속됨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어느 누구나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고 싶은 것은 사실인데 로마 카톨릭은 상기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종교를 선택할 때 선호할 확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내세의 보장과 더불어서 현세에서도 크게 구애됨 없이 ‘나도 종교인이다’고 생각하며 신앙 생활할 수 있는 종교라면 현대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종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사람의 입맛에 맞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된다면 그 많은 종교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에서는 로마 카톨릭이 기독교와 다른 주요 교리를 중점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본론

로마 카톨릭의 주요 교리

 

1. 로마 카톨릭이 사용하는 성경

① 구약 : 그리스어 칠십인역 46권

② 신약 : 27권(기독교와 동일)

구약성서의 권 수에는 천주교(46권)와 개신교(39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 근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 여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 =셉튜어진트(Septagint) 희랍어판]이라 한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된 구약성서의 정경(正經) 39권이 있다. 이를 제 1경전(정경)이라 한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을 합친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13~14장), 에스겔서 일부 (10,4~16,24)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 이라 한다.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제 2경전]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다.

 

이들의 주장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리스어 칠십인역 46권을 성서로 인정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 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 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에서 300 구절을 사용했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태 6:14 / 집회서 28:2

마르코복음 6:15 / 집회서 48:9-10

루가복음 13:27 / 1마카베오서 3:6

루가복음 24:4 / 2마카베오서 3:26

요한복음 3:12 / 지혜서 9:16’고 주장

 

2. 천주교와 조상제사

인(仁)을 핵심으로 하는 유교는 효(孝)를 통해 인을 실현하며 모든 덕의 근본을 효라 한다. 이 효에 의해서 사람됨을 평가한다. 효의 정신은 생명을 준 부모와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 있다. 이 효도는 부모 생시뿐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하여 이어간다(중용 19장).

제사는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생시와 같이 공경하는 효도의 증표다. 그러므로 유교의 조상 제사는 복을 구함에 있지 않다. 자녀로서 부모와 선조에게 보본(報本)과 보은(保恩)의 효를 계속 실현하는 데 있다.

조상 봉제사(奉祭祀)에 대해 천주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신이 아닌 관습을 그대로 허용한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점을 강조한다.

 

조상에 대한 올바른 효도

1) 조상의 영혼[귀신]

신(神)처럼 숭배할 수 없다.

2) 길흉화복

조상의 영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3) 죽은 후

조상의 영혼(귀신)이 살아서 배회한다든지, 음식으로써 그 영혼을 공양한다든지, 또는 제사 때에 일시적으로 강생하여 제물을 즐겨먹고 축복해 준다고 여기는 것 은 오직 상상일 뿐이다.

4) 죽은 이의 영

살아 생전에 닦은 행실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천국 혹은 지옥 그리고 연옥의 심 판을 받는다. 교회는 천국에 들지 못하고 연옥에서 보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한다.

 

3. 성모 마리아 숭배

1) 하느님의 어머니

2) 동정녀

3)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의 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낳았고, 그 후에도 하느님의 은총을

언제나 보존하였음을 뜻함

4) 원죄 없이 태어나심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특별한 몸으로 선택받았으므로 원죄가 없는 은총을 받으심

5) 승천

몸과 영혼을 그대로 가지시고 하늘로 올림을 받으심

6) 성모 마리아와 성화상의 공경

예수 그리스도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이 예수께서 살았고, 접촉한 장소와 사물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고 성지(聖地)로서 존경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님을 따라 산 성인들에 대하여도 사랑과 경의를 다 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의 공경

마리아님은 구세주의 구세(救世)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성모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의 일치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리아님은 그리스도님의 "어머니"요 그리스도님의 지체들인 신자들[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오래 전부터 마리아님에 대한 교회의 신심(信心)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원을 위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얻어주는 마리아님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님의 중재 역할을 감소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사실 마리아님의 온갖 영향은 그리스도님의 넘치는 공로에서 나온다. 마치 그리스도님의 사제직에 성직자나 평신도가 여러 모양으로 참여함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① 천주교회는 하느님과 마리아님을 혼돈하지 아니한다.

하느님께는 마리아님을 포함하여 만물 위에 높이 공경하는 흠숭지례를 바치므로, 마리아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님을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 사랑과 공경을 드린다.

7)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모든 면의 모범과 으뜸이 되시므로 교회의 어머니로 높임

8) 중재자이신 마리아

우리와 그리스도의 직접 결합을 도와줌

9) 교회의 전형이신 마리아

교회 공동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심

덕행의 탁월한 모범으로 교회의 모범이 되심

 

4. 고해성사

하나님과 이웃을 거슬러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교회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에게 그 죄를 드러내는 것

① 제정

요 20:22-23에 의해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 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에 근거

② 트렌트 공의회에서 정당화

③ 3가지 요구 조건

참회

고백

보속 - 죄에 대한 현세적인 벌/사제가 고해자에게 주는 실천행위를 채우는 것

④ 고해성사에 해당하는 죄

십계명을 범한 죄/주관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무겁게 느껴지는 죄

 

5. 그리스도인의 죽은 후 사상

① 심판

사심판-육신을 떠난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각자 받는 심판

공심판

② 연옥 - 세상에서 정화되지 못한 영혼들이 하느님을 뵙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전까지 단련 받는 곳

③ 임보(limbus)

13세기부터 특수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장소나 상태를 지칭 하기 위해서 ‘임보’란 말을 사용했다.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는 자기 죄 가 없다. 그러나 세례 성사로서 구원은총을 받지 못하였고, 다른 방법으로 주 어지는 은총에 자유로운 응답을 한 것도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따 르는 대부분의 신학자들, 그 유아들이 은총 없이 죽어서 하나님을 뵐 수 없지 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연적 행복을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임보의 존재나 성격에 대하여 교회가 공식 선언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6. 교회의 가르침과 그 무류성(無謬性)

교회가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것을 판정할 때마다, 예수 친히 허락하신 대로 성령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 그르칠 수 없으니 곧,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할 때와, 주교들이 공의회에서 교황과 한 가지로 판정할 때 그러하다.

 

7. 그리스도의 현존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전례 안에, 전례를 드리는 사제의 인격 안에, 신자들이

모여 공동 기도를 바칠 때, 성서의 말씀 안에 현존

 

8. 성사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은총을 교회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해 주실 때 사용하는 눈에 보이는 표지들로서 짧게 말해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는 외적 표지이자 그 도구.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 7가지가 있다.

세례(洗禮) : 물로 씻는 예절을 통해 받는 성사로서 세례전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성사

(마태 28:19~20)

견진(堅振) : 세례 받은 신자를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성령과 칠은을

주는 성사로서 하느님의 일군이 되게 한다. 기름과 안수로 함

(사도 8:15~17)

성체(聖體) :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들 서로간에 일치를

가져다주는 성사로서 영혼 생명의 양식이 된다.(마태 26:26~28)

고해(告解) : 하나님과 이웃을 거슬러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교회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에게 그 죄를 드러낸다(요 20:22-23)

병자(病者) : 병과 노쇠로 위험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병자의 이마와 양손에 혹은 급한 경우에는 이마나 몽의 아무 부분에 기름을 발라주고 기도해 주는 성사(약 5:14,15)

성품(聖品) :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승하여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고 복음을

선포하도록 교회 안에 주교, 신부, 부제를 세우는 성사로서, 이 성사를 통하여 이들 성직자들에게 필요한 은혜가 베풀어진다.

혼인(婚姻)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성사(마 19:5,6)

 

9. 십계명

첫째,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흠숭하고 사랑하라

둘째,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셋째,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넷째, 부모에게 효도하라

다섯째, 사람을 죽이지 말라

여섯째, 간음하지 말라

일곱째, 도적질하지 말라

여덟째, 거짓 증언하지 말라

아홉째,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열째,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결론

로마 카톨릭은 이단이라고 말한다면 가장 큰 이단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와 너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단을 넘어서서 타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로마 카톨릭은 성경 말씀에 세상 종교를 혼합해버린 종교이다. 마리아를 예수님보다 더 높이려고 하는 것은 시날 땅(후에 바벨론 도성이 세워진 곳)에 세워진 니므롯 왕국의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죽은 자기 남편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아들을 낳았을 때 니므롯의 재 탄생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들을 경배하게 하면서 이 아들을 낳은 자기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로마 카톨릭주의의 정체, 랄프 우드로우, (주) 할렐루야 서원 편, 1987)

이들은 한 번 그릇된 것을 주장하고, 그릇된 길로 가니까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제 이, 제 삼의 오류를 범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천상천하의 모후"이시고 마이라의 모성은 "천상에서도 계속된다"라고 공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를 통해 기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마리아의 중보성으로 발전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그가 낳은 아들이 그 형제들인 많은 신도들의 맏이시므로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이 교회를 모성애로 돌보시는 교회의 참된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효심을 가지고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마 카톨릭은 인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종교이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를 여러 가지로 높이고, 로마 교황을 신과 같이 높이는 행위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사야 할 일이다. 또 성경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구미에 맞게끔 성경을 이용하는 일이야말로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여 죽이는 꼴이다. 명백한 우상 숭배인 조상 제사에 대해 관대 한다든지, 불교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평화와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 교류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보다는 사람의 유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사람의 구미에 맞추려는 악한 일이다. 여기에 어떻게 구원이 있겠는가?

 

▶ 천주교의 4대 교리

강생구속(降生救贖)

처음에 원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제2위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서 구속사업을 완성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구속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담의 죄가 가져온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원히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바뀌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서 11절 말씀에는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분의 부활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부활로 인해 내 부활이 보장될 때 그것이 내게 의미를 주게 됩니다. 부활의 문제 뿐 아니라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분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선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의 하루하루가 작은 부활을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심.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 계시지만 위(位)로서는 세 위를 포함하여 계시니,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심. 이 도리(道理)는 하느님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어야 함.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세 위격이 일체를 이루신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서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오 3:16-1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18-20)의 성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심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느님은 죽은 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을 끝없이 주시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끝없이 주심.

글자 그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이 있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의 상과 벌은 이 세상에서 받는 상과 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받게 되는 상과 벌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하느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때 천국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삶의 상태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느님과 우리의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도움이 전혀 없이 우리를 만드셨으나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데려가실 때는 우리의 도움을 절대로 필요로 하십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모든 신앙생활에 우리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는다면 매사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되고 잃은 것이 있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고 그것이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갔다고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뿐 아니라 시간의 30분의 1도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한다면 그것이 곧 감사하는 삶의 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br>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는 지대가 너무 낮아 여러 강물로부터 들어오는 물을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다른 곳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사해'에는 소금기가 지나치게 많이 축적되어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게되었고 결국 죽음의 바다, '사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내가 속한 공동체에, 사회에 환원시킬 때 우리의 삶이 진정 살아있는 생명체의 삶,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br>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두 번째 방법은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내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늘 기도한다는 것은 늘 하느님과 같이 있고자 함을 의미합니다. 그분께 많은 청원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분을 그만큼 온전히 신뢰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을 닮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똑같은 무게를 지닌 두 번째 계명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면 제일 먼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누가 복음 10장 25절에서 30절에는 착한 사마리아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하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즉, 종족이나 종교, 성별, 나이, 신분에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사랑의 행위를 베푼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는 결론입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이런 의미에서 가장 일차적인 나의 이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를 갖고 구체적인 작은 화해의 행위(예를 들어 전화를 건다든 지, 카드를 보낸다든 지)를 시도함으로써 우

리는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용서하라는 말씀이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수를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이 모든 사람에게도 공통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 가며 살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존재(天主存在)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심.

죤 포엘이라는 신학자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연 날리는 아이의 비유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연을 날리는 아이에게 한 어른이 너는 네 연이 저기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는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끔씩 당겨지는 줄을 느끼며 연이 아직도 있다는 걸 안다고 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주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바꿀 때마다 변하지만, 어느 땅위에 살고 있더라고 그 위의 하늘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하늘로 우리와 함께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 논쟁점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480년 가까이 흐른 20C를 마지막 보내는 오늘에 있어서 개신 교회와 카톨릭 교회는 신학적으로 교리 상으로 얼마나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또 얼마나 먼 위치에 있는가? 분명 오늘의 상황은 종교개혁 시대의 상황은 아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상호적 그리스도로 규정했던 심각한 갈등은 지금에 와서는 많이 완화되어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그 갈등은 완화되어 있는가? 오늘에 있어서는 개신 교회와 로마 카톨릭교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없는가? 분명히 옛날의 갈등이 완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 중 일부는 종교개혁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에 있어서 개신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논쟁점은 무엇인가?

 

1.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교황 수위권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모든 사도들 중의 으뜸되는 사도이다. 그리스도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다. 그리고 이 베드로는 그의 권한을 로마에 있는 교황에게 양도했다. 따라서 로마의 교황은 지상의 베드로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그리고 이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각 지역의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가 진정한 사도적인 교회이다. 이 사도적인 교회 속에 진정한 천국열쇠가 존재한다. 이 유명한 로마 카톨릭의 사도권의 계승이론에 의하면 개신 교회는 유감스럽게도 진정한 사도적인 교회가 되지 못한다. 개신 교회는 진정한 사도적인 교회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개신교회 성직자들 역시 진정한 성직자가 아니다. 진정한 성직자는 합법직인 주교에 의해 서품받은 신부들만이 진정한 성직자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 유명한 사도권의 계승이론은 카톨릭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다. 카톨릭은 로마의 교황을 우두머리로 하는 상명하복적인 구조를 교회의 중추로 생각하고 이 사고방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교회> 개념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다. 1980년대의 보프(L. Boff) 신부에 대한 심문은 그의 해방신학이 카톨릭의 교황청과 갈등을 빚은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긴 했지만 사실상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의 유명한 교회론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이 주창하는 <아래로부터의 교회론>을 교황청이 결코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 교황 수위권 및 사도권의 계승이론은 정당한 이론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잘못된 이론 때문에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와의 진정한 에큐메니칼적 일치는 심각한 장애에 부딪히고 심지어는 일치운동이 원천적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카톨릭은 개신교회에서 받은 모든 성례를 무효로 보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세례도 무효이고 성찬도 무효이다. 이것은 개신교회의 성직자들이 성례를 집행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는 개신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멸시가 그 근거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심각한 개신교회에 대한 멸시를 잉태시키고 있는 베드로 수위권 및 교황 수위권과 사도권의 계승이론의 신학적 정당성을 살펴보면 어떻게 되는가? 먼저 베드로가 역사적 예수의 계승자라는 베드로 수위권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베드로가 역사적 예수의 계승자라는 신학적 성서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카톨릭에서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디에 그 근거가 있는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마 16:16-19 이 바로 그것을 위한 성서적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위의 본문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 틀림없고 또한 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긴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예수께서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답은 달랐다. 루터(M.Luther)는 반석을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해석했고 칼빈(J.Calvin)은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루터가 해석한 반석을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본 견해는 잘못된 해석이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을 보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예수의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베드로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해석한 칼빈의 해석은 이 본문을 매우 훌륭하게 해석한 탁월한 해석이다. 그런데 이 탁월한 칼빈의 해석도 완벽한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이 결함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말한 예수의 말씀이 문맥상으로 베드로라는 개인을 향하고 있지 신앙고백이라는 추상명사를 향하고 있지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칼빈의 해석이 갖고 있었던 결함은 20C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극복되었다. 쿨만(O.Cullmann)이나 레드(G.E.Ladd)같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의 <너>를 <고백자 베드로>로 해석했고 이 해석은 이 본문에 대한 매우 탁월한 해석이었다.

 

<고백자 베드로>라는 말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로서의 베드로라는 말이다. 즉,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신 것이고, 따라서 그 말씀은 그 순간은 베드로라는 개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의 대표일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마 16:16-19에 대한 해석으로 칼빈에 의해 훌륭하게 해석되고 20C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다듬어진 <고백자 베드로>라는 해석이 이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여전히 이 본문을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엄밀하게 언급하면 이 본문은 카톨릭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완전히 막혀있는 본문이 아니다. 이 본문 한 구절만으로 생각하면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교회의 상황과 성서전체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만일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본문이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틀림없고 또한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가 틀림 없다면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초대교회의 최고의 지도자는 당연히 베드로이어야 한다. 그러면 베드로는 정말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초대교회의 수장이었는가?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이에 대한 답은 상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의 대체적인 결론은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의 수장은 베드로가 아닌 예수의 동생 야고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정은 갈 2:9에서 바울이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기는 3명의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야고보, 게바, 요한>의 순으로 언급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 야고보라는 이름이 베드로라는 이름보다 먼저 언급되어 있을까? 이것은 우연일 수 있다. 무스너(F.Mussner)와 같은 갈라디아서를 주석한 카톨릭의 대표적 신학자는 이 문제가 갖는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이것은 결코 서열 순서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본문 하나만으로는 이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서열을 암시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 낼 수 없다. 양쪽의 가능성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 15:6-21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도회의 장면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이 사도회의의 장면은 야고보가 이 회의의 의장이었다는 것을 상당 부분까지 암시하고 있다. 이 회의에 베드로도 참석하고 있지만 베드로의 발언은 참고 발언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이고 이 회의를 주재하고 결론짓고 결정사항을 공포하는 이가 야고보이다. 이 사도회의의 장면은 100%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야고보가 초대교회의 중심적인 지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당히 깊은 곳까지 암시하고 있다.

 

갈 2:12 이하의 본문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해 나오는 비겁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베드로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을 두려워 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 야고보가 보낸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 베드로의 비겁한 행동을 보고 바울이 베드로를 꾸짖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만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 바울이 어떻게 베드로를 꾸짖을 수 있었을까? 바울은 단 한번도 베드로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사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바울은 언제나 베드로를 자신의 동역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의 모든 증거들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카톨릭의 주장의 허구를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마 16:16-19의 본문은 <고백자 베드로>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성서와 초대교회의 역사에 상응하는 해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중심적 지도권을 일시적으로 베드로가 아닌 야고보가 행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은 베드로 수위권을 위한 반론을 위한 것이지 야고보 수위권이나 이와 유사한 계층적 질서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모두 민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공동체 속에서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수의 동생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일시적으로 교회의 중심적 위치에서 일했지 않았겠는가 라고 추정할 뿐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행 15:6-21의 사도회의를 오늘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주교단회의의 모체로 생각하고 교황은 베드로의 권한을 이어받고 주교들은 다른 사도들을 계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모체가 되는 행 15:6-21의 사도들의 의장이 야고보였다면 이 주

교단회의의 의장이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성서적으로 그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라는 사실이라고 해도 로마의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것은 더더욱 그 근거가 희박한 허구이다. 이것은 근거가 희박한 정도가 아니고 근거가 아예 없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후에 초대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그 누구도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권한을 이어받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문서가 지금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은 철저히 허구이다. 그러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가? 카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구원의 기관으로서의 지상교회는 사도단의 단장인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화에 의해 사복되며,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도 베드로가 사복하다 로마에서 순교했기 때문에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사복을 하게되는 역사적 사실 때문인 것이다." [이기정 편저, 중요 교리, 전례 용어해설 (서울; 카톨릭 출판사, 1992), p115].

 

베드로는 과연 로마에서 순교했는가? 그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가능성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클레맨스 편지에 의하면 베드로와 바울이 네로 시대에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한 것과 로마교황 수위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만일 죽은 장소가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예수께서는 죽으셨는데 그러면 예루살렘의 주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베드로가 죽을 때에 자신의 권한을 로마의 주교에게 양도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철저히 허구이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이고, 로마의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로마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된 주교만이 사도권을 계승한다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허구이다.

 

그러면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계승한 분은 누구인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계승한 분은 죄 많고 허약한 인간이 아니고 성령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오늘날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은 성령이시지 그 밖의 어떤 존재도 아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바로 이 보혜사인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진정한 사도로 만드신 분은 바로 이 성령이시다. 그리고 진정한

성직자도 바로 이 성령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 진정한 성직자인 것이다.

 

그러면 교회의 사도성은 어떻게 되는가? 카톨릭에 의하면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주교가 다스리는 교회가 사도적 교회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잘못되었다.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들의 통치하는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이다. 그런데 마지막 사도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사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죽었지만 사도들의 말씀, 교훈, 복음은 남아있다.

 

오늘날 교회가 사도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사도들이 남긴 말씀과 그들의 교훈과 복음에 복종하는 것은 사도들이 남긴 말씀과 그들의 교훈과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도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즉 교회가 그분들의 말씀과 교훈과 복음에 복종할 때, 사도들의 권위는 살아있는 것이고, 이렇게 되었을 때 사도들의 통치는 교회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적 교회는 정신이 살아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동시에 사도적 교회는 사도들의 삶에 동참하는 교회를 의미하는데 곧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 당했던 사도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가 진정한 사도적 교회인 것이다.

 

2. 마리아론

현재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마리아론의 핵심적인 정신을 요약하면 다음의 5개 항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

2) 마리아는 원죄가 없었고 죄 없는 삶을 살았다.

3) 마이라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다.

4)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이다.

5) 구원사역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중재성.

 

첫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는가?

물론 아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 아들과 딸들이 있었다."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이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냐"(마13:55) 이상의 마태의 증언에 의하면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 최소한 아들이 4명 있고 딸도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먼저 우리 주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영화로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생각하며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2항) 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명백한 오류이고 성서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의 신학자들은 위의 마태의 본문에서 형제라는 개념을 사촌형제와 그와 유사한 관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녀 이론을 정당하다는 지극히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참고 J.Binzler,Die Buuder und Schwestem Jesu,1967).

 

마 13:55의 내용은 요셉과 마리아가 언급되고 그리고 아들들의 이름과 딸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이 마리아의 아들, 딸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마리아를 위해 성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마리아의 평생동정녀이론은 수녀원 제도의 존속을 위해서는 유효할지는 모르다 역사적 진실은 아니다 사도신조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출생시킬 때 동정녀였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성서의 증언과 일치한다.

 

둘째, 마이라는 원죄가 없었고 죄 없는 삶을 살았는가?

1854년 12월 8일 교황 피우스(Pius)9세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는 교리를 선포했다. 소위 마리아는 무염시대의 교리는 19C 중엽에 비로소 공적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종교 개혁시대의 개신교와 카톨릭 사이의 논쟁점이 아니고 오늘의 신학적 논쟁점이 되고있다.

 

13C 카톨릭의 신학의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von Aquin,1225-1274)는 마리아의 무염시대의 교리를 부정했다. 1439년에 바젤(Basel) 공의회는 무염시대의 교리를 신앙조항으로 선언했지만 이 공의회는 당시 교황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아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트랜트공의회는 (1545-1563)에서도 이 문제는 반대자들의 입장 때문에 하나의 동일된 견해를 얻어낼 수 없었던 교리였다. 그런데 이 교리가 유감스럽게도 교황 피우스 9세에 의해 선포되었고,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마침내 티없이 깨끗한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9항)라고 피우스 9세의 교의가 추인되고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천주의 성모는 마치 성신께 형성된 새로운 조물같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아무런 죄에도 물들지 않으셨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6항) 라고도 선언했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죄 없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셨다.

 

셋째, 마리아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는가?

마리아는 몽소승천의 교리는 20C 중엽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선포된 교리이다.1950년 11월 1일 교황 피우스(Pius)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두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신앙의 진리이다"라고 선포했다. 이 해괴망측한 이상한 교리는 오늘의 카톨릭 정신을 대변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 받으셨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9항)라고 선언함으로서 연속적으로 추인하고 있다. 그런데 마리아의 무염시대 및 몽소승천의 교리는 마리아를 예수님에게 버금가는 천상천하의 모후로 추대하려는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신심의 발로로써 성성에 근거가 없는 크게 우려할만한 교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마리아를 예수님과 버금가는 존재로 만들려는 카톨릭 교회의 의도는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형론을 하와와 마리아 사이의 유형론으로 발전시킨 교리 속에서도 잘 찾아 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주장하면서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형론을 하와와 마리아 사이의 유형론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성서에 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제2의 그리스도로 승격시킬 위험이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넷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인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4C 초부터 언급되기 시작하다 431년 에베소(Ephesus)공의회에서 신조로 공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오늘의 카톨릭이 언급하는 하나님의 어머니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마리아가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참된 어머니였다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교리인 동시에 이 마리아에게 출생하신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셨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일치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교리였다. 그런데 이 교리를 오늘날 카톨릭교회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형태로 이 교리의 그 핵심을 변경시키면서 원래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쉽게 추가시킨 채로 이 교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엄밀하고 정확하게 언급하면 마리아는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어머니셨다. 그런데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예수님의 어머니 되심을 영원화시키면서, 마리아는 천상에서도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영원히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영원히 하나님의 어머니이시고 또한 그 역할을 하도록 규정되신 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천상천하의 모후"이시고 마이라의 모성은 "천상에서도 계속된다"라고 공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 천상에서도 계속되는 마리아의 모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에 언급될 마리아의 중보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마리아를 통한 기도의 유효성과 본질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그가 낳은 아들이 그 형제들인 많은 신도들의 맏이시므로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이 교회를 모성애로 돌보시는 교회의 참된 어머니이다.그러므로 교회는 효심을 가지고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해야 한다.

 

그런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나 교회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성서적인 표현이 아니다.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라는 개념은 성서에 도무지 존재하지 않고,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는 것은 에베소 공의회의 원래적 의미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면 오해의 소지가 많으므로 마리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셨다는 표현으로 만족하는 것이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혼란을 피할 수 있는 훨씬 좋은 것으로 보인다. 성서 속에서 마리아의 영원한 하나님의 어머니 되심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는 오히려 예수님이 마리아를 낳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신 분으로 파악하는 것이 성서의 정신에 가깝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시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영원한 모성에 대한 카톨릭의 주장은 성서의 정신을 상당부분 뒤집는 것이다.

다섯째, 마리아가 인류 구원 사역에 있어서의 중재자일 수 있는가?

 

교황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마리아가 고난 당하고 죽은 그의 아들과 함께 고난을 겪었으며 예수와 함께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상을 발표했고 이러한 선언은 교황 피우스(Pius) 11세에 의해 재가되었다. 즉, 마리아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에서 예수님과 협력했던 분이므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함께 이룩하신 분이고 지금도 마리아는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있는 구원의 중재자라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트 15센나 1917년 "모든 은총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큰 고통을 받는 성모님의 자녀들이 생생한 신념을 가지고 위대하신 천주의 모친께 간절히 호소의 기도를 올리기를 바랍니다" (이기정 편저, 중요교리, 전례용어해설, P291)라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이 선언 속에서 우리는 로마 교황청이 마리아에 대한 기도를 장려하고 있고 또한 마리아가 은총의 결정적인 통로임을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 의하면 마리아는 우리의 "변호자"이고 구원의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 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과한 교의헌장, 제62항).마리아는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리아의 청을 가능한 한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마리아와 "깊이 결합되도록"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권고하고 있다(교회에 과한 교의헌장. 제62항).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도 바오르의 말씀대로 우리의 중재자는 한분 뿐이시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60항)라고 선언하고 있다. 카톨릭의 공적인 교리는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로"라는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즉,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를 갖는 중재자라는 뜻은 아니다. 마리아를 통해 전달되는 은총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전달된 은총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교회는 은총의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길은 두 길이 아닌가? 그리스도께 직접 기도해서 은총을 받는 하나의 길이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혹시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이 더 유효한 은총을 받는 길이 아닌가라는 간과될 수 없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것은 특히 카톨릭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리구리(Alfons von Libuori,1787년경 사망)의 [마리아의 영광]이라는 책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심각한 의혹이다. 카톨릭 교회 내에서 100판 이상 인쇄가 된 이 유명한 책에서 리구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응답 받을 수 있다"라는 언급과 "아들이 그 모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가?"등의 언급을 한바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혹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두 길 중에 실재적으로 사용되는 길은 마리아를 통하는 길 뿐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 카톨릭의 [중요교리, 전래용어 해설]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 알퐁스 리구리께서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공로에 의해 우리에게 은총과 구원을 얻어 주실 수 있는 중재자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신다. 비록 성모님은 예수님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어내실 수 없지만, 실재에 있어서는 우리가 청하는 모든 손을 거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어린아이가 아닌 왕으로, 힘세고 권력을 장수로서 오실 수 있었고, 또한 오심에 성모 마리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나누어주심에 성모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모님을 통해서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이기정, 중요 교리, 전래용어해설 , p291-292). 이상의 언급에서 매우 중요한 중재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이 성서의 본질적인 정신이고, 그리스도밖에 하늘의 여왕이 또 한 분 계셔서 은총을 중재한다는 것은 성서와 심각하게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교리이다.

 

3. 성사제도와 성직자의 사죄권

개신교회가 2가지 성례만(세례, 성찬) 인정하는데 반해 카톨릭 교회는 7가지 성사 (세례,성찬,신품,고백,견진,혼인,종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외형상 카톨릭 교회가 개신교회에 비해 성사제도가 5가지 더 많다는 차이보다도 성사제도에 대한 두 교회의 내적인 인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 차이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성직자들에게 죄를 사하는 사지권이 있다는 카톨릭 교회의 주장이다.

카톨릭 교회에 의하면 우리들의 죄는 카톨릭의 사제들에 의해 사죄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원죄가 사죄되고 고백성사를 통해 우리들의 자범죄가 사죄된다. 또한 종부성사 때 우리의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에 기름을 바르고 신부가 기도가 있으면 이 땅에서 지은 죄가 사죄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 성직자들의 사죄권은 마16:19과 요20:21-23)에 근거되어 있다는 것이 카톨릭 교회의 주장이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 열쇠 속에는 사죄권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의 예수님의 말씀은 죄를 용서하거나 죄를 보류하거는 권세가 포함된 것으로 카톨릭 교회는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권세는 교황과 주교를 통해 사제들에게 전달되어 있는 권세이다.

 

그러면 우리의 죄는 오직 사제들을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는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가? 오늘의 카톨릭 교리서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죄의 사람은 고백성사로만이 아니라 전례의 기도와 (특히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나) 신심기도로써도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단, 여기에는 반드시 통회가 따라야 하며 큰 죄는 고백을 꼭 해야 한다[카톨릭 교리서해설(서울: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1984),P398].

 

위의 카톨릭 교리서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신심기도로써 직접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큰 죄는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는 마지막 부분에 붙어 있는 중요한 언급이다. 카톨릭 교회는 대죄와 소죄를 구별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대죄는 우리의 구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큰 죄이다. 카톨릭교회에 의하면 탐욕, 교만, 호색, 분냄, 시기, 게으름, 미사에 불참하는 것 등은 대체로 대죄에 속한다. 그러나 대죄와 소죄의 구분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대체로 보아서 살인, 강조, 교만, 성적범죄 등 큰 죄로 여겨지는 것은 대죄이고 그렇지 않는 것이 속죄이다. 그런데 구원의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대죄도 반드시 고백해서 고백성사를 통해 사제를 통해 사죄를 받아야 된다는 이 중요한 단서는 결국 사제를 통하지 않고는 큰 죄의 용서는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카톨릭 교회의 주장은 작은 죄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큰 죄는 반드시 사죄를 통해서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결론은 지극히 위험하고 우려할 만한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카톨릭 교회에서는 큰 지는 사제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용서하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카톨릭 교리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는다는 말이 의미하는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하고 있다는 비판이 부분적으로는 지나치다 해도 상당 부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의 사건이다. 눅 18:9-14에 나오는 세리의 기도는 죄 용서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직접적 만남의 사건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 준다." 하나님이여! 긍휼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세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고백하기 위해 사제에게 가야한다고 한 번도 가르치신 적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죄 용서함을 받고 거듭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최초의 만남의 사건도 사제들의 세례가 아니다. 카톨릭 교회에 의하면 사제들의 세레를 통해 비로소 원죄가 사해진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을 때 그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즉, 죄의 용서와 칭의는 일차적으로 말씀의 사건인 동시에 믿음의 사건이다."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다"(눅 24:47) "저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는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카톨릭의 사제의 세계가 없이는 원죄의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카톨릭의 교리는 죄의 용서와 칭의가 말씀의 사건이요 믿음의 사건이라고 가르치는 성서의 정신과 충돌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죄의 용서와 칭의는 제도적인 카톨릭 교회 속에 폐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전파를 통해 나타나는 말씀과 성령의 사건이다. 이 말씀과 성령을 카톨릭이라는 제도적인 교회 속에 유폐시키면 안 된다.

 

성사제도에 나타나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직접적으로 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스도께로 직접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사제도와 안수를 통해 죄가 직접적으로 용서되고 성령이 직접적으로 주입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다. 이 잘못된 신념은 신품성사와 견진성사에도 나타나는데 신품성사와 견진성사 때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직접 주입된다고 카톨릭 교회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품성사 때의 주교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신도들에게 주입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성령이 결국 교회의 제도 속에 유폐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바로 이와 같은 성사제도의 문제점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화체설과 더불어 카톨릭 성사제도의 심각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4. 교황과 교회의 무오성

1870년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 무오성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우리는 신적으로 계시되니 교리인 교항에 대하여 가르쳐 확실하게 하고자 하나니, 교항이 그의 지고한 사도적 권위를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양하고 치료하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자리에서 말할 때는, 신적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향하여 믿음과 도덕에 관계되는 교리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부여하신 무오성을 소유하게 된 축복 받은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신적인 지원에 의해, 온 세계 교회가 지켜야 할 신앙과 도덕에 관계된 교리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 자신이 언급한 이러한 정의들은 - 교회의 동의가 있더라도 - 변경시킬 수 없다.

 

교황 피우스(Pius) 9세에 의해 주장되기 시작하고 제1차 바티칸 공의희에서 확정된 교화 무오성의 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65)에서도 계속적으로 추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의 으뜸이신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과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결정은 교회가 통의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개정될 수 없는 것이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베드로 안에서 이미 교황에게 약속된 성신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므로 이 결정은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치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도 있을 수 없다. 그럴 때에는 로마 교황이 개인 자격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회 자체의 무류의 은사 (카리스마)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카톨릭 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것이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25항)라고 선언했다.

 

결국 오늘의 카톨릭 교회는 종교개혁 시대에도 공헌되고 있지 않았던 교황무오의 교리를 놀랍게도 이 개명한 시대에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무오성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그 첫째는 교황의 무오성이고 둘째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주교단의 무오성이다. 이 무오성은 내용적으로 교황이 주재한 공의희의 무오성을 의미한다. 셋째의 무오성은 전체교회의 무오성이다. 이 3가지 무오성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이3가지 무오성은 내용상으로 살펴보면 결국은 교황의 무오성으로 집약된다. 왜냐하면 전체교회의 무오성을 전체교회를 사실상 대변하는 기관은 전체 주교들의 모임인 공의회 뿐이기 때문에 공의희의 무오로 귀착되고 공의회 역시 교황이 빠지면 그 모든 결정이 무오한 전체교회의 결정으로서의 효력이 없기 때문에, 즉, 공의희의 결정은 교황이 인가할 때에 비로소 무오한 결정이기 때문에, 결국 3가지의 무오성은 내용적으로 로마 교황의 무오성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그러면 교황의 결정은 정말 무오한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먼저 그 유명한 갈렐레오 재판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다. 교황 바울 5세(1605-1621)와 교황 우르반 8세 (1623-1644) 는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하나님이 말씀에 위배된다고 선언했고 갈릴레오를 고문하고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가두지 않았던가? 1619년 5월5일에 금서목록총회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로 정하고 지구가 돈다는 이론은 성서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으로 탄핵하지 않았던가? 이와같은 세인들의 질문을 잘 알고 있는 교회는 교황 무오의 이론에 "신앙이나 도덕에 과한 교리를 선포할 때" 무오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즉, 자연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오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대해 무오하다는 설명이다.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기 마리아의 무염시대의 교리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과연 무오한가?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가 성모승천의 교리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과연 무오한가? 동정녀 마리아는 정말 평생 동정녀이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성서와 근본적으로 충돌되는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이미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교황 식스 투스(Six -tus) 5세는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Vulgata)의 옛 번역을 좋아해서 이 옛 번역을 조금이라도 고치는 자는 출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번역문은 이미 수 없이 고쳐진 채로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공개적으로 무오성을 부인했던 교황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이노센트 3세, 클레멘트 4세, 그레고리 11세, 하드리안 6세, 바오르 4세 등이다.

무오성은 하나님의 속성이지 인간의 속성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이 지상의 그리스도 대리자라는 잘못된 교리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마침내 교황이 교황의 보좌에서 행하는 일을 무오한 그리스도의 일과 동일화시킴으로써 교황의 보좌에 앉은 교황을 신격화시키는 대단히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류는 성서와 신학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를 지극히 제한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탄압 받을 심각한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결언 >

오늘의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는 과거 종교개혁 시대와 같은 심각한 갈등상황 속에 있지 않다. 카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면서 일치운동에 방해되는 온갖 경솔한 열심을 피할 것을 전체 카톨릭 신도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일치운동에 방해되는 온갖 경솔한 열심을 피할 것을 전체 카톨릭 신도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제24항) 이 권고는 훌륭한 권고라고 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 내에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교리상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가 일치로 나아가는데 불필요하고 경솔한 열심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의 진정한 일치를 위해 우리는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교황 수위권 및 베드로 수위권, 마리아론, 성사제도 및 성직자의 사죄권, 교황 및 교회의 무오성 등은 신학적 오류이므로 카톨릭 교회가 다시 검토해서 바른 신학적 입장을 갖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나타나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사회정의와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성은 훌륭한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바이다.

 

 

 

 

 

출처 : 제일복된복음교회
글쓴이 : 그리스도의 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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