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옥형태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안정된 농업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곳 도시들과 성읍들을 점령하면서 거주의 형태도 크게 변화되어 고정된 집이 이동생활의 천막을 대신하였다.
초기의 집들은 햇볕으로 말린 흙벽돌로 지었다.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하게 되었고, 자연석의 돌이나 자갈로 지은 집들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철 도구로 돌들을 다듬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네모난 돌들이 건축에 사용되었다. 갈릴리 지방에서는 검정색을 띈 현무암이 건축에 사용되었고, 해안지방에서는 갈색의 사암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흰색을 띈 석회암이 집 건축에 사용되었다.
A. 단칸방 집
1. 집의 구조
1) 집의 크기
이스라엘에서는 집을 짓는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로 여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집을 짓고 나서는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신 20:5). 일반인들의 거주지는 방 하나로 이루어진 단칸방 집이었다. 집의 넓이는 별로 크지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3 평방 미터 정도였다.
2) 벽
집의 벽은 두터운 진흙 벽돌이나 자연석으로 만들었는데, 벽에는 식량이나 부엌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다. 주로 흙 벽돌 혹은 진흙으로 틈새를 메운 돌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둑이 집안으로 들어오기가 쉬웠다. 그래서 도둑을 밤에 집을 뚫는 자(욥 24:16)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고 하였다 (마 6:19; 24:43). 돌로 지은 벽은 돌 사이의 틈새가 있어서 뱀이 쉽게 기어들 수가 있었다. 그만큼 벽은 허술하였다. 선지자 아모스는 준비 없이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을 집에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림 같다(암 5:19)고 하였다.
3) 창문
창문은 대개 하나가 있었는데, 작도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때로 이런 창문에 안에서 밖을 내어다 볼 수 있도록 나무 격자를 만들어 끼웠다 (잠 7:6). 겨울철에는 이 나무 격자를 가죽이나 다른 형태의 커텐으로 덮었다.
4) 문 격자로 된 창문
창문은 대체로 그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집의 문은 바깥 빛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래서 농촌지역의 단칸방 집은 아침에 해가 뜨면서 문을 열어 놓은 것을 하루 종일 닫지 않았다. 해가 지면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도시 집들의 문은 그렇지 않았다. 주께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집의 문은 도시 집들의 문이다 (계 3:20). 문에는 돌쩌귀가 달려 있었다. 잠언에서는 게으른 사람을 돌쩌귀를 따라 도는 문에 비유하여 침상에서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잠 26:14).
4) 방바닥
집안의 바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즉 문 가까이는 땅을 평평하게 다져 놓았고, 방의 안쪽은 돌로 조금 높게 단처럼 만들었다. 방 안쪽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거나 모여 앉아 쉬거나 잠을 자는 곳이다. 빛이 부족하고 땅으로 되어 있는 집 바닥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일을 쉽지 않았다 (눅 15:8). 난방과 요리를 위하여 불을 피우는 일은 낮은 방바닥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비롯한 짐승들을 이곳 낮은 바닥에서 키우며 재우기도 하였다.
5) 지붕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지붕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다목적 지붕의 용도는 성경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에서 지붕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되었다. 그 용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여름철 건조한 계절에는 잠자리로 사용됨; (b) 곳간 혹은 곡식을 말리는 장소로 사용됨(수 2:6); (c) 공지사항을 알리는 장소로 사용됨 (마 10:27); (d) 기도의 장로서 사용됨 (행 10:9); (e) 위급한 경우 도피로로 사용됨 (마 24:17; 막13:15; 눅 17:31) 집 꼭데기
2. 등불
집안을 밝히는 데에는 올리브기름 등잔이 사용되었다. 초기의 등잔은 질그릇으로 된 열려있는 접시 모양이었다. 등잔의 한쪽은 심지가 놓일 수 있도록 접혀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등잔은 심지를 세우는 일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 윗 부분이 덮여 있고 양쪽으로 구멍이 두 개있는 등잔이 바벨론 지방에서 도입되었다. 두 개의 구멍 중 하나는 심지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름을 채우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등잔은 심지를 세우는 관이 막혀있어 기름을 쏟지 않은 채 장소를 옮길 수 있었다. 기름이 잦아들게 되면 심지에서 끄름이 나게 되는데, 이때에 기름통에서 기름을 보충해야 한다 (마 25:8). 기원전 5세기 경 헬라에서 손잡이가 있고 여러 장식이 새겨진 등잔이 수입되었다. 또한 여러 개의 심지를 세울 수 있도록 구멍이 많은 등잔도 있었다. 이러한 등잔은 필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등을 높이 달아 놓을수록 집안을 잘 밝힐 수가 있었다. 그래서 등잔은 벽에 돌출 되어있는 돌 위에 올려놓거나 천장에 끈을 달아 매달아 두기도 하였다. 등잔대를 만들어 그 위에 등잔을 올려놓기도 하였는데, 가장 단순한 등잔대는 흙으로 된 방바닥에 단단한 나무 가지를 꼽아 놓는 것이었다. 등잔대가 없을 때에는 됫박 같은 용기를 엎어놓고 그 위에 등잔을 올려놓거나 아니면 방바닥에 등잔을 놓기도 하였다. 이런 당시 생활상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는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마 5:15) 라고 하였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사 42:3)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등잔에 기름이 다 타버리면 심지에서 심한 연기가 나온다. 이때에 사람들은 기름을 보충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타버린 심지를 갈아 끼우게 된다. 여호와의 종은 기름이 없이 타버리는 심지와 같은 약한 자들을 버리지 않고 심지를 갈아주고 기름을 보충해 주는 분이다.
3. 땔감
유목민의 천막생활과 같이 단칸방 집에 살았던 일반인들은 일기가 허락하는 한 밖에서 음식을 요리하였다. 그러나 겨울철이 되면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화덕을 사용하였다. 농촌에서는 짐승들의 배설물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성서시대 널리 사용되었던 땔감이었다 (겔 4:15). 사람들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왕상 17:10). 땔감이 많이 부족하였던 이스라엘에서는 마른풀이나 시들은 꽃도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마 6:30). 이스라엘에 흔한 가시덤불은 중요한 땔감이었다 (삼하 23:7; 시 118:12; 전 7:6; 사 9:19; 10:17). 아마도 숯불은 고급 연료이었을 것이다 (요 18:18; 21:9).
B. 두 칸 방 이상의 집
1. 집의 구조
두 칸 이상의 방을 갖고 있는 집을 지을 때에는 방을 나란히 짓지 않고 두 방 사이를 방 하나 정도 넓이로 떼어서 지었다. 방과 방 사이의 공간은 앞이 트인 안뜰이 되었다. 세 개의 방이 있는 집의 경우에는 안뜰을 삼면에서 싸고 있는 모양을 하였다. 세 칸 이상의 방을 지을 때에는 옆으로 잇대어 짓기 때문에 안뜰은 더욱 넓어졌다. 이런 안뜰은 나무나 꽃을 심어 가꾸기도 하였다. 실제로 성전 안뜰에는 나무가 심겨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집 뜰에 심긴 나무에 의인을 비유하였다 (시 52:8; 92:13)
2. 안뜰의 용도
안뜰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제적인 활동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안뜰의 저수조
이스라엘집의 안뜰에는 빗물을 받아 두는 저수조가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런 저수조를 우물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빗물을 받아 두는 물통에 불과하다. 주로 바윗돌을 깍아 만들고, 내부를 물이 새지 않도록 방수 처리한다. 예레미야는 이런 저수조를 웅덩이라고 표현하였다 (렘 2:13). 건조한 여름철이 끝날 때 즈음에는 저수조의 물이 모두 마르게 되어있는데, 이런 마른 저수조는 숨어 있기에 적합한 곳이다 (삼하 17:18). 물통의 입구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뚜껑을 덮고 그 위에 곡식단을 놓으면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는 은신처가 될 수 있다.
2) 날씨가 추울 때는 불을 피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요 18:18)
3) 목욕 장소
다윗이 내려다보는 중에 밧세바가 목욕하였던 것은 밧세바의 안뜰이었다. 비록 밧세바는 자신의 집안에 있었지만 보다 높은 궁전의 지붕 위에 있었던 다윗은 안뜰에서 목욕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삼하 11:2).
4) 식사의 장소
오늘날도 옛날과 같이 안뜰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이 되었을 때 그 집의 안뜰에서 식사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눅 7:36-50).
3. 문
문은 집 앞면 중앙에 위치하였다. 이 문은 교묘하게 만들어져서 길가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큰집의 경우에는 대문이 있었고 작은 문이 달려있었다. 작은 문은 평소에 쓰이는 것이고 큰문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베드로가 두드린 대문은 큰문에 달린 작은 출입문이었을 것이다 (행 12:13).
큰문이 있는 집에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나 하인이 있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장소도 이런 대문이 있었던 곳이다 (마 26:71; 막 14:68). 문지기는 집을 방문한 손님의 신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데 신분을 확인하는 방법은 주로 방문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행 12:13-14; 계 3:20).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늘날의 것과 같이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장정이 어깨에 멜 정도로 큰 열쇠가 사용되었다 (사 22;22). 열쇠는 보통 나무로 만들지만 쇠로 만든 것도 있다. 자물쇠는 대문의 안쪽에 달려 있는데, 주인은 밖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문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 구멍으로 팔을 집어넣은 다음 열쇠를 끼워 열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만나러 오는 모습을 겞だ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아 5:4) 라고 하였다.
C. 이스라엘 집과 지붕의 중요성
1. 일반 주택의 구조와 지붕
신명기 22:8에 의하면, 새로 집을 지을 때 지붕에 난간을 만들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에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난간이 없는 지붕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게 되면 그 죽은 사람의 피가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왜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권 속에서 지붕은 사람의 접근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지붕은 형태와 용도에서 오늘날과는 전혀 달랐다. 과연 사람들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난간이 필요했던 당시의 집 구조와 지붕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시대 일반 보통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주택은 방 하나로 된 단칸 집이었다. 당시 생활은 주로 집 밖에서 이루어지고 집에서는 단지 저녁에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는 휴식지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한 용도의 집에 대하여 당시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외부를 치장하는 일도 없었다. 집안의 바닥은 땅을 골라 다진 정도였고,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은 진흙에 석회와 자갈을 섞어 바닥을 만들기도 하였다. 로마시대에 이르러서는 호화스러운 모자이크 바닥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장식 바닥은 부유층에 국한되었다. 집의 벽을 만드는 데에는 진흙을 햇볕에 말린 흙 벽돌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욥기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을 흙 집(욥 4:19)이라고 하였다. 때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사암으로 벽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사암은 겉모양이 거칠어 이음새가 넓고 벽면이 거칠었다.
단칸방으로 이루어진 보통 집의 지붕은 맨 밑바닥에 벽과 벽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놓고 그 위로 갈대나 가시덤불을 깔았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흙이나 진흙으로 덮었으며, 마지막으로 모래나 자갈을 뿌린 다음 굴림대로 평평하게 다져 비가 새는 것을 막았다. 이 굴림대는 지붕 위에 그대로 두고 있다가 비가 내리고 나면 다시 그것을 굴려 지붕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지붕 위에는 겨울철 비가 내리면서 잡초들이 자라게 된다. 그러나 이런 풀들은 햇빛이 조그만 쬐어도 금방 말라버리게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온을 미워하는 자를 자라기 전에 마르는 지붕의 풀에 비유하고 있다 (시 129:6). 지붕을 아무리 단단하게 다져 놓았다 하더라도 비가 많이 내리면 빗물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잠언에서는 다투는 아내를 집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에 비유하였다 (잠 19:13; 27:15).
2. 지붕이 사용되는 용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지붕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다목적 지붕의 용도는 성경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에서 지붕이 사용되는 용도는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살펴 볼 수가 있겠다.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지붕에는 사람들의 접근이 잦았고, 그런 지붕에 안전을 위하여 난간을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될 것이다.
1) 잠자리로 사용되는 지붕
비가 내리는 겨울철에는 날씨가 춥고 비가 내림으로 지붕에서의 잠자리는 불가능하지만 고온 건조한 여름철 동안 지붕은 좋은 잠자리를 제공한다. 특히 습기가 적기 때문에 시원하고 쾌적한 저녁과 아침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 사무엘과 지붕에서 담화를 나누었던 사울은 이곳 지붕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이 있다 (삼상 9:25-26)
2) 곳간으로 사용되는 지붕
이스라엘의 지붕은 통풍이 잘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기 때문에 곡식이나 과일을 익히거나 말리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라합은 자신의 집 지붕에 벌려 놓았던 삼대 속에 여리고를 살피러 온 이스라엘 정탐군들을 숨겨 주었다 (수 2:6).
3) 공지사항을 알리는 장소로서의 지붕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 공지사항이 있을 경우 전달 책임을 맡은 사람은 그 마을에서 제일 높은 지붕에 올라가 큰소리로 그 내용을 알렸다. 때로는 나팔을 불어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공지사항은 주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나절에 있었다. 이러한 관습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고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 10:27) 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서는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하였다.
4) 기도의 장로서 사용되는 지붕
지붕이 기도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구약시대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바냐 선지자는 지붕에서 일월성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멸절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습 1:5). 베드로가 환상을 본 것도 제 육시 기도를 위하여 올라갔던 지붕에서였다 (행 10:9). 지붕이 기도의 장소로 선호되었던 것은, 마치 산 위가 예배의 장소로 선호되었던 것과 같이, 지붕은 곧 그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5) 위급한 경우 도피로로 사용된 지붕
성경시대 집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이어 지어졌기 때문에 지붕과 지붕을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예루살렘과 같이 인구가 조밀한 도시지역에서는 집과 집을 이어 연결되는 지붕길이 있었다. 맨 마지막 집에는 밑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음으로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통행할 수가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마 24:17; 막 13:15; 눅 17:31)고 하셨을 때 지붕길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3. 다락방
여유가 없는 서민들은 지붕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때로는 이곳에 천막 혹은 움막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지붕 위에 항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락방을 짓기도 하였다. 다락방은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휴식처가 되었고, 종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명상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는 그를 접대하는 장소가 되었다. 주로 여름철에 사용되는 다락방이기 때문에 지붕 위의 다락방을 여름방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다락방은 밖으로 통하는 통로 계단이 있기 때문에 집안 사람들에게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고 드나 들 수가 있었다.
수넴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위하여 담 위에 작은 방을 지었는데, 이것이 지붕에 지은 다락방이다. 이 방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 등의 기본적인 가구가 마련되었다 (왕하 4:10).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갖은 곳도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매년 절기 때마다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순례객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러한 다락방을 많이 이용하였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던 다락방은 그 후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기도의 장소가 되었다 (행 1:13).
4.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 (막 2:4)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온 네 사람은, 예수가 계신 그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다. 여기에서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당시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갈대 혹은 나무 가지 위에 진흙을 바르고 모래나 자갈을 덮은 당시의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간단했을 뿐만이 아니라 원상대로 복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일은 집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지붕 위에 있는 곡식이나 물건을 내려놓기 위하여 지붕을 뜯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예수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에게 큰 방해가 되었을 것이고 또한 몸이 불편한 병자를 그렇게 달아 내리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마가복음 2장에서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만든 것은 집의 본 지붕이 아니라 비상 통로로 사용하는 지붕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집안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고, 다른 하나는 집 밖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후자의 경우는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노출되어 있었지만, 전자의 경우는 비상시를 위한 계단으로서 평상시에는 본 지붕처럼 덮어두었다. 이들 네 사람이 뜯어낸 지붕은 집안으로 통하는 비상용 통로로서의 지붕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지붕을 벗겨내는 일은 쉬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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