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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키르벳 쿰란과 사본의 발견

그리스도의 군사 2013. 5. 30. 22:37

키르벳 쿰란과 사본의 발견

 

 

사해의 서쪽 해안가 절벽 근처에서 1947년 봄에 베두인"타아미레"출신의 한 젊은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 암벽 사이로 달아난 양을 찾아 암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동굴을 발견 동굴  속으로 돌 하나를 장난삼아 던지자,마치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겁을 먹고서는 달아났다가 이틀 후에 다른 소년과 함께 다시 이곳에 와서 동굴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여 여러 개의 개진 도자기 조각들과 더불어 커다란 항아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두개의 항아리 속에는 무명천으로 감겨있는 시커먼 사본 덩어리가 들어있었다.이것이 최초의 사해사본 발견이었다.

이 목동이 속한 무리가 이 사본들을 한 시리아 상인에게 팔고자 했으나,사본에 기록된 글씨를 판독할 수 없던 이 상인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 마가 수도원의 책임자인 시리아  대주교 마르 아타나시우스에게 사본의 일부를 판다.또 다른 일부는 히브리 대학의 고고학 교수 수케닉에게도 팔았다.이 문서의 중요성을 인식한 수케닉교수는 히브리 대학을 위해 세 개의 문서(불안전한 이아야 사본,성경 시편을 닮은 시편의 모음,빛과 어둠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야기를 담은 문서)를 구입하게 이른다.
1948년에 마르 아타나시우스의 허락을 받아 이사야 사본과 공동체의 규율서,하박국 주석서가 출판이 된다.
이렇게 발견된 고 문서의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베두인들은 이 일대를 다시금 뒤져 1952년 2월에 같은 지역에서 두 번째 동굴을 발견한다.당시 예루살렘 도미닉 수도원 소속 연구원 신부인 로랑드 보가 이끄는 발굴단은 1952년에 3동굴과 5동굴를 발견하고 1955년 또 다른 7,8,9,10의 동굴을 발견한다.동굴 4는 알지 못했으나 베두인이 1952년 발견했는데 가장 많은 문서를 담고 있는 동굴이었다.그 뒤 2개의 동굴은 타미르 사람들이 발견함으로서 (동굴6,동굴11)쿰람일대의 문서 발견은 1956년으로 끝이났다.
열한 번재 동굴이 발견된 이래 수 많은 사본들이 확인되었으나 실제로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본들이 있었는지는 알수 없었다.
1967년 6일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상당히 보존이 잘된 한 사본을 수케닉교수의 아들인 야딘이 "성전 두루마기"라 불리우는 긴 사본을 입수하게 되었다.대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1947-1956년 사이에 모두 11개의 동굴 안에서 엄청난 양의 귀중한 고대 사본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사해에서 발견된 문서들이 공동체의 산물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내려온 전승물들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를 다음의 세 부류로 나눌수 있다.
1>구약성서의 사본
2>외경및 위경
3>쿰란문서들이다.쿰란에서 발견된 전승물과 ,에세네파 사람들의 창작물로 나눌 수 있다.


★히브리어 성서 사본(구약성경의 사본)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 가운데 성서 사본이 대략 200여 개나 되는데,에스더를 제외하고는 전체 구약성서가 단편으로나마 모두 발견된 셈이다.대다수 사본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에스더서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에스더 9장20절 이하에서 언급되는 "부림제"를 거부하는 에세네파 사람들의 의도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부림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축제가 아니라는 이유임)
이제가지 발견된 성서사본의 수는 다음과 같다.

쿰란문서

창세기

15사본

시편   

36사본

 

출애굽기

17사본

욥기

4사본

 

잠언

2사본

레위기

13사본

 

민수기

8사본

아가

4사본

 

신명기

29사본

룻기

4사본

 

여호수아

2사본

애레미아애가

4사본

 

사사기

3사본

전도서

3사본

 

사무엘상,하

4사본

열왕기상,하

3사본

 

다니엘

8사본

이사야

21사본

 

에스라

1사본

예레미아

6사본

 

에스겔

6사본

역대상,하

1사본

 

열두소예언서

8사본

에스더,느헤미아

없음

 

 

 

 

 

총202개 사본


이 발견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현제 우리가 읽고 있는 히브리 성경본문은 중세에 만들어진 사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본의 신뢰성에 의문의 여지가 많았다.
쿰란에서 발견된 오래된 사본은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올라간다.나머지 성서본문들은 쿰란거주지가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는 해인 기원 후 68년 이전에 기록이 되었다.현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어 성서가 토대로 삼은 중세 대의 사본들보다 800년 이상 앞서서 기록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서본문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마소라 본문사이의 차이는 쿰란사본을 통해서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성경사본본문은 100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어로 성경을 번역한 이른바 70인역본(셉투아긴다)과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에 들어있는 구약성경 외경에 속하는 유딧서,마카베오 상.하,솔로몬의 지혜서등 어느 하나도 쿰란에서 발견할 수 없엇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70인역본과 우리가 현제 사용하고 있는 "마소라"본문과 비교해 보면본문과 단어 이해에서 차이가 나는데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사본이 70인역과 동일함이 드러났다.70인여과 마소라본문 차이는 팔레스타인에 현존했던 다양한 본문의 차이에서 근거를 둘수 있다.

★외경Apocrypha및 위경Pseudepigrapha
구약 외경 중 기원전 2세기 이전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었던 토비서와 시락서만 쿰란동그ㅜㄹ에서 발견되었다.기원전 190년 경에 기록된 시락서(집회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이집트 카이로 시에 있는 "카레어-시나고그"에서 20세기 초에 발견된 복사본을 통해서 이미 알려져 있었다.그 후11번 재 동굴에서 발견된 시편 사본에 담겨있는 시락서 51장이 발견되었다.쿰란에서는 두 종류의 묵시문학 위경도 발견이 되었는데 쿰란 사람들은 이 문서를 특히 중요시 했던 것 같다.
첫번 째 히브리어로 기록된 희년서이다.이야기는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저술하고 있다.천지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산에 도달하고,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기 위해 시내산을 오르는 시점까지의 내용을 (출19-20장)묘사하고 있다.쿰란사람들이 이 문서를 중시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1년을 364일로 잡는 태양력 때문이다.당시 음력을 사용하던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쿰란사람들은 이 태양력 전통에 따라서 여러 전통예식을 지켰다.또 하나의 발견된 위경은 "에녹서"이다.이제가지 에녹서는 이디오피아어를 사용하는 콥틱 교회의 정경으로만 알려져 왔다.
이디오피아어 에녹서는 5개의 상이한 묵시록 이다.

※천사 에녹서.그림 에녹서.천문학 에녹서.꿈 에녹서.권면 에녹서다.그림 에녹서만 제외하고는 모두 쿰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중 천문학의 에녹서가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이 사본은 기원전 200년 경에 쓰여졌고 기원전 164년에 기록된 구약의 유일한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보다 생성기가 앞선 묵기 묵학이다.
그림 에녹서에서 관심을 끄는 문구가 있다.이 문서에는 하나님의 전권을 대신하는 "인자人子"라는 표현이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희년서와 에녹서 이외에도 구약의 위경에 속하는 "열두 족장의 유언서"와 관련된 사본이 발견되었다.그외 나프탈리의 유언.유다의 유언.요셉의 유언.레위의 유언등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전승물들

1>성전 두루마기

대략 400년경으로 추정이 된다.이 문서는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된 문서들이다.모세와 다윗,솔로몬과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모세 오경에 기록되어있는 이제까지 있었던 다양한 하나님의 계시를 더욱 보충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 문서는 놀라운 구성을 갗추고 있다.
이 작품의 히브리어 본문을 보시려면 다음과 같다
Y.Yadin, The Temple  Screoll (3 Vols.with a supplement), Jerusalem,1983

2>창세기 외경
 

첫 번째 쿰란동굴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단 하나의 사본만이 발견되었는데,상당부분이 파손되었다.판독하기 쉽지 않는 몇개의 컬럽이 보존되었을 분이다.이 작품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의 내용을 더욱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창세기5장23절에서15장4절가지의 내용에 살을 붙여 확대해석하여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소멸되었고 단지 몇 컬럼만이 판독해 낼 수 있을 뿐이다.라멕이 노아의 탄생을 말하고 있고,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안식일 제사노래
에센파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 작품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다.모두 10개의 사본이 발견되었는데,봄문이 상당히 훼손되었다.네번째 쿰란동굴에서 8개 사본이 발견되었고 열 한 번재 쿰란동굴과 A.D74년에 부서진 요새 "마사다"에서도 하나늬 사본이 발견되었다.마사다에서 발견된 사본은 쿰란사람들이 소장했던 것이 아니라 쿰란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의 소유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워지는 일종의 예배의 순서를 담고 있다.에센파 공동체가 제사장을 우두머리로 한 조직임을 감안할 때,안식일 제식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이 작품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1년을 4단계로 23개의 안식일로 구성되는데,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천사들이 안식일 예배 때 부르게 될 13편의 시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안식일 제식을 집행할 때,하늘의 천사제사장들과 함께 지상의 제사장들도 참여하고 있다.예언자적이고 구약 시편을 본 딴 서술로 미루어 이 작품은 예루살렘 성전 제식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전쟁문서
이 작품은 빛과 어둠의 세력 사이에 벌어질 종말전쟁에 대한 여러 규정을 담고 있다.에세네파 사람들이 이 작품을 특히 뭉요하게 여겼음을 모두 합쳐 10개의 발견된 사본에서 알 수 있다.이 작품은 통일된 하나늬 작품으로 전승된 것이 아니고 전승 중에 복잡한 과정과 첨가한 과정을 걸쳤다.기원전 2세기 초 헬라레니즘문화가 물밀듯 밀려오던,유대교가 심한 곤궁에 빠졌을 당시(기원전 172년 이 후)에 작성되었다고 믿어진다.
이 작품은 전쟁중에 필요한 여러가지 조치를 담고 있다.일종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조치들이다.군대의 무장.군대배치.전투계?.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의 기도문 등이다.
이 작품의 주제가 문서 처음에 잘 나타나 있다."........마스클을 위하여',전쟁규정,빛의 자식이 어두움의 자식의 운명에 대하여,벨리알의 무리와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족과 아말레족 도한 블레셋의 무리에 대항하여,앗수르의 키팀의 무리에 대항하여,이네들과 한통속으로 돕는 악마들에 대항하여 싸움의 시작이다.
이 종말의 전쟁은 제사장들이 지휘에 다라 움직이게 되는데,마치 여호수아6장에 나타나는 여리고성 공약의 모습에 견주어 볼 수 있다.여기에서의 전쟁은 글자 그대로 전투행위라기 보다는 일종의 제식행위로 이해되고 있는 샘이다.종말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다윗 가문의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고 전쟁수행의 최고 역활을 대제사장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쿰란 에세네파의 착작물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 중 40개의 작품만이 이 동아리에 속한다.


동아리에 속하는 작품들은 한결같이 당시 통요되었던 아람어나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기보다는 에센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전통 수호에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요나단에게 보내는 교사의 편지

일종의 할라카(유대종교법)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편지문은 네 번째 쿰란동굴에서 6개의 사본이 상당히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이 편지지 가운데,토라의 규정을 요약하여(토라의 실천사항)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서 유래한다.작품 성격에 따라 "요나단에게 보내는 교사의 편지"라는 제목으로도 부른다.이 제목에서 나타내고 있듯이 이 작품은 쿰란.에세네파의 설립자이며 최고 지도자인 이른바 "의의 교사"가 당시 유대의 최고 정치지도자인 마카비 가문의 요나단에게 보내는 편지다.이 작품의 시기를 에센파 설립기인 기원전 150년경으로 볼 수 있다.이 작품은 에세네파 설립시기의 역사적 정황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여기에는 364일의 태양력에 따라서 1년 중 모든 안식일의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는데,요나단이 도입하여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1년을 364일로 나누는 태음력 사용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기 위한 것 같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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